정윤정 작가를 처음 보았을 때의 일이었다. 그녀는 참 뾰족했다. 나를 매우 경계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던 표정으로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날카로웠던 첫 만남처럼 그녀는 내게 거친 사포에 뾰족한 색연필로 그린 인물화를 보여주었는데 그림은 유연하고 활력이 넘쳤다. 인물화에 있어 감탄이 야박한 내게 자극을 준 것은 유치원 때 짝꿍의 그림 이후로 그녀가 내 생에 두 번째였다. 그녀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되었을 때도 별일 아니라는 듯이 그려나가는 스케치 작품들을 보며 늘 뒤에서 그녀의 재주를 흠모했다. 이후로도 그녀는 인물을 참 구체적으로 잘 그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녀의 작품에서 인물의 형체가 점점 모호해졌다. 그 계기가 손바닥 뒤집기처럼 생성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나눴던 대화들에서 나는 답을 알 것 같았다. 그녀는 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감상을 사색적으로 풀어냈다. 사람이든 상황이든 그녀는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려 했다. 본질에 가까워지면서 그 과정에서 그녀는 늘 “깨달았다”고 했다. 그 본질과 깨달음은 무엇일까. 다양한 해답이 있겠지만 대표적으로 이번 전시와 연관된 ‘실루엣’이 있다. 그녀가 말하는 ‘실루엣’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까. 스튜디오 지브리의 <붉은 돼지> 작품에 대한 글에서 정윤정 작가의 ‘실루엣’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멋있다”라는 것은 무엇인가.

중년의 비행기 조종사이면서 돼지인 주인공이 우리에게 어떤 물음을 던지는가. 아름다우면서 즐겁고 정직한 그가 무엇이 멋있는가를 인생을 걸고 추구하는 것은 아닐까. “멋있다”는 역설적으로 “볼품없다”도 포함한 “멋있다”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붉은 돼지(1992)> 작품에서 주인공 ‘포르코 롯소’는 중년의 돼지 얼굴과 인간의 신체를 지닌 아름답지 않은 외형의 파일럿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그는 외형을 뛰어넘는 아우라를 드러낸다. 말 한마디의 묵직함과 고요함 때로는 거침없는 언변과 자신의 비행기에 대한 애정 그리고 열정에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외형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 정윤정 작가가 말하는 ‘실루엣’이라는 부분에 대한 정의는 ‘롯소’와 닮았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시점’에 대한 질문도 함께 던지고 있다. 이는 ‘실루엣’과도 연관이 있는데 고정된 이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이미지들은 계속해서 그들만의 화음을 이루고 있고, 정의 내릴 수 없다. 그녀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무명의 사람들과 기본적인 도형들을 통해 단순하지만, 우리 모두의 이야기에 가까워진다. 단순함 속에 들어 있는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본질’에 있어 우리는 색상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한다. 그녀가 사용한 블랙이라는 컬러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개념을 보는 이가 객관적으로 읽을 수 있게 한다. 대표적으로 피카소의 ‘게르니카’ 작업이 비슷한 예시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작품에서 피카소는 오직 블랙만 사용한 까닭을 다른 색상이 들어가면 그 색상에 대한 언어와 영혼이 섞여서 본인이 말하고자 하는 본질에 가까워질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윤정 작가의 작업도 그런 의미에서 관객이 우리가 바라보는 이미지들에 대해 좀 더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정윤정 작가는 일상 속에서 스스로 질문을 자주 던지는 작가이다. 그녀는 늘 자신과의 대화에 거침없고 부지런하다. 그리고 그에 대한 사색을 자신도 모르게 주변과 나누고 있다. 오랜 시간 작가를 가까이에서 보았을 때 그녀는 깨달음 속에서 자신과 작업에 벽돌 하나하나를 가지런히 쌓아가는 견고함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더욱이나 개인적으로 그녀를 더 좋아하는 점은 견고함 속에서도 푸른 초원을 달리는 야생마와 같은 모습 때문이다. 그런 성향이 그녀만의 실루엣을 가까운 화자로부터 그리고 그 주변인들에게 점점 짙게 스며드는 힘으로 느끼게 한다. 그럼 과연 우리는 어떠한 실루엣을 가졌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를 비추고 있는 빛 뒤로 드리워진 변하지 않는 실루엣이 어떤 모습인지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작가 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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